목회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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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서울 소경2025-07-09 07:13
작성자 Level 10

3.1절을 맞아 모처럼 아내와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남들 모두 도시 밖으로 나갈 때 서울 도심으로 갔더니 차도 사람도 많지 않아 좋았습니다. 평소 가고 싶었던 서울한양도성길을 걷고 싶었는데, 그제부터 아픈 아킬레스건 때문에 멀리 걷는 것을 포기하고, 가까운 몇군데만 아쉽게 돌아보았습니다실제 기온은 영하 2도인데 바람이 심해서 체감 온도는 영하 6도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설마했는데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겨울 바람 때문에 눈을 뜨기도 힘들었습니다.

도착해서 먼저 간 곳은 '최순우 옛집'입니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저술한 혜곡 최순우 선생이 1984년까지 기거하셨던 옛집을 수선하여 기념관으로 개장한 '최순우 옛집' 3월말까지 겨울 휴관을 하고 있기에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좁은 골목길 안 다정한 분위기는 참 좋았습니다건너편 대로변에 있는 조형물을 보니 조지훈 시인의 시비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은 대표 청록파 시인입니다. 아쉽게도 조지훈 시인이 실제 살았던 집은 현재 헐리고 없습니다. 하지만 시인을 기념하고자 그가 살았던 집터 가까운 성북동 길에 '시인의 방' 이라는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조지훈 시인은 자신이 살았던 모든 집을 '방우산장(放牛山莊)' 이라고 명칭했는데, 그가 1953년 신천지에 기고한 '방우산장기'에서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내가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만 있으면 그 소가 지금 어디에 가 있든지 내가 아랑곳할 것이 없기 때문' 이라고 말한 것에서 연유하였다고 합니다. 시인의 내재적 사상을 볼 수 있는 명칭이라 하겠습니다.

날이 너무 차고 발의 상태도 시원찮아 원래 계획했던 상허 이태준 고가와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성락원과 길상사, 휴관중인 간송미술관은 다음을 기약하고, 따뜻한 커피 한잔 하러 근처 카페를 찾았습니다. 온두라스 원두를 핸드 드립으로 내려주는 주인장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검색해보니 이미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온두라스 원두의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취향에 딱 맞는 맛이었는데 아내는 전혀 맞지 않다고 고개를 돌립니다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동네 유기농 빵집입니다. 통밀빵을 사기 위해 들어간 곳인데 특이하게 왕씨 성을 가진 한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빵집이었습니다. 커다란 통밀빵 하나를 샀습니다. 빵이 무겁게 느껴진건 처음입니다. 제대로 된 빵인듯 합니다. 내일 아침은 이 빵을 구워서 내린 커피와 함께 먹을 예정입니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서울의 소경을 보았습니다. 의미 있는 장소를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조금은 힘들고 아쉬운 여정이었지만 역사와 시간, 공간과 사람들, 그리고 오늘 제가 직접 느낀 짧지만 포근한 이 감동이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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