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림에 대하여 최근에 몇
가지 제게는 중요한 물건들을 잃었습니다. 주로 사용하던 체크카드를 분실했는데 어디서 어떻게 놓쳤는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분실신고를 한 후 다시 발급을 받았습니다. 겨울이면 늘 애정하며
오랫동안 잘 사용했던 가죽장갑 한 짝도 잃어버렸습니다. 한 짝만 잃었지만 졸지에 남겨진 한 짝은 세상
소용없는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마 전에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잃어버려 한참을 찾았는데, 도저히 찾지 못하다가 책과 책 사이에 끼어있는 모습을 보고 허탈하게 웃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그것이 중요한 물건이든지,
정든 것이든지, 또는 추억이 새겨진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물건의 가치를 떠나 그것과 함께 한 시간과 기억들이 중요성을 부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건도 이러한데 하물며 사람이라면 어떠할까요? 혹시 내가 잃어버린
대상이 특정한 사람이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전율이 일어납니다.
저희 큰아이가 7살쯤 되었던 해입니다. 한번은 전자 제품을 파는 대형마트에 일이
있어 함께 간 일이 있는데,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아이가 순식간에 많은 인파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는데,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아내와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좋지 못한
수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TV에서나 보던 일이 당장 우리 현실이 된 것입니다. 다행히 아이는 멀리 가지 않아 긴 복도 끝에서 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 가족에게는 가급적 사람 많은 장소를 피해 가는 작은 트라우마가 생긴 듯합니다.
성경에는
잃어버린 것과 일에 대한 이야기(비유)들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 탕자의 비유도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비유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성경에서의 잃어버림은 다시 찾음에 대한 희망적인 이야기로 결론이 납니다. 인간사의 잃어버림에 대한 대부분의
일들이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지만, 성경에서의 잃어버림은 새로운 세계로의 확장이 일어납니다. 잃는다는 자체는 그리 좋은 시간이 아니지만, 그 시간 이후에 다시
찾음에 대한 기대는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다시 부여합니다. 잃는다는
것은 찾음을 전제로 할 때 희망이 됩니다. 상실의 시간만큼 간절함이 더해지기도 하고, 다시 만날 것에 대한 기대감이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의
상실은 그 누구도 다시 찾음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없습니다. 잃어버렸다는 것은, 이미 기억의 단절이며, 실용성의 상실이고, 결국 찾지 못하지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고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혹시
나는 삶의 자리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한번 돌아봅니다. 시간, 물건, 사람, 또는 기억까지, 이 모든 것들이 소중한 그 무엇이라면, 잃기 전에 그 소중함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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