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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비움으로 채워지는 제자의 삶 2026-03-25 03:19
작성자 Level 10

어느 날 잘 아시는 한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제 삶은 왜 이리도 힘겨운 걸까요? 제가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바라는 것도, 타인보다 더 잘되려는 거창한 야망도 없는데,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너무 숨이 가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이들은 모두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사는 것 같은데 왜 저는 이렇게 위태롭게 서 있는 기분이 들까요?” 이 질문은 사실 그분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질문의 끝에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아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생각을 잠시 멈추고 그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그 아픔의 실체를 조금은 이해하고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먼저 깨달아야 할 부분은, 우리가 부러워하는 타인의 평온함이 때로는 멀리서 본 신기루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면 아래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버둥 치지 않는 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각자의 사막을 건너고 있습니다. 다만 그 고통과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 내면에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예수의 제자라 칭하면서도, 실상은 갈릴리 해변에 버려두어야 했을 낡은 그물무거운 배를 여전히 등 뒤에 짊어진 채 주님을 따르려 합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거나, 설령 안다 해도 그것에 맺힌 아쉬움과 미련 때문에 차마 손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 정도를 버려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물음에 성경은 단호하게 답합니다. “모두 버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가 그분을 따랐을 때, 그들은 단순히 직업만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정의하던 생업의 도구인 그물을 던졌고, 삶의 터전인 배를 떠났으며, 심지어는 혈육의 정마저 뒤로한 채 오직 예수의 발자취만을 쫓았습니다.

우리는 또 묻습니다. “왜 굳이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합니까? 적당히 타협하며, 한 손에는 주님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세상의 끈을 쥐고 갈 수는 없나요?”

그것은 제자의 삶이라는 여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무게 때문입니다. 만약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를 따르기로 작정한 뒤에도 자신들의 생업의 도구였던 배를 육지로 끌어올려 가는 곳마다 끌고 다니려 했다면 어땠을까요? 어부가 천직이었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며, 젖어서 무거운 그물을 어깨에 둘러메고 예수를 따라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면 그들은 과연 주님의 속도를 맞출 수 있었을까요?

물론 억지로 따라갈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걸음은 기쁨이 아닌 형벌이었을 것이며, 제자로서의 사명보다는 짐의 무게에 짓눌려 결국 중도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 삶의 팍팍함은 바로 여기서 기인합니다. 주님을 따르겠다는 영적인 갈망과 이 땅의 안락함을 결코 놓지않겠다는 육적인 집착이 충돌하며 우리를 양쪽에서 잡아당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서도 영화를 누리고 싶어 하며, 동시에 저 하늘에서도 그 이상의 영광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어깨에는 세상의 명예를 메고, 허리에는 물질의 안정을 동여매고, 두 손과 발은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불안으로 묶인 채 주님을 따르려 합니다.

이 땅의 것도, 하늘의 것도 무엇 하나 포기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 하면서 양옆에 가득 짐을 꾸린 채 들어가려 하니 문턱을 넘기도 전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입니다. 진정한 고통은 주님을 따르는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면서도 버리지 못한 '나의 것들'이 만드는 짐의 무게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수의 제자됨이란 무엇일까요? 제자됨은 결코 고행의 길을 스스로 자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나를 얽매고 있는 거짓되고 세상적인 안전장치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먼저, 제자됨은 '신뢰의 이동'입니다. 나를 먹여 살릴 것이라고 믿었던 '배와 그물'에서,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나의 생존 근거를 옮기는 일입니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는 주님이 나를 온전케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제자됨은 '전적인 순종'입니다. 내 삶의 운전대를 내가 쥐고, 내가 원하는 짐들을 가득 실은 채 주님을 조수석에 앉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모든 소유와 미련을 내려놓고, 그분이 운전대에 앉으셔서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몸과 마음을 맡기는 순종의 모습입니다.

세 번째, 제자됨은 '우선순위의 재편'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하늘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귀한 보물인 예수를 발견했기에 나머지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는 세상적 기쁨의 포기를 말합니다.

나의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질 때 여러분의 어깨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주님이 지워주신 멍에가 아닌, 내가 스스로 짊어진 낡고 무거운 그물이 혹시 나를 짓누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제자의 삶은 무거워지는 길이 아니라 가벼워지는 길입니다. 모든 것을 버렸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온 세상을 품으신 주님과 함께 가장 자유롭게 걸을 수 있습니다. 비움으로써 채워지고, 버림으로써 얻으며, 죽음으로써 다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예수 제자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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