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주방에서 또각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나갔더니 아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먼 길 시골에서 보내신 어머니의 겨울 톳과 죽순으로 나물을 무치는 중입니다.
남편이 먹을 반찬이 마땅치 않다며 바지런하게 손을 움직입니다. 차가운 아침 바람을 맞으며
가야 할 출근을 앞두고 주방에서 새벽을 보내고 있습니다. 점심시간, 홀로 집 식탁에 앉아 아내가 만든 반찬을 냉장고에서 집어냅니다. 뚜껑을
열고 곱게 쌓인 눈송이 같은 톳 나물을 한가득 입에 넣습니다. 오독오독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립니다. 고소한 두부와 깔끔한 나물이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맛을 냅니다. 아내의
손맛이 느껴집니다. 사랑이 뭘까요? 누구나 사랑에 대한 정의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어떤 종류가 있을까요? 지독한 자기애도 사랑의 한면이겠지요. 이렇게 보면 사랑은 무척이나 다양한 면을 가진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어떤 사랑이 더 큰 사랑일까요? 사랑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은 또 무엇일까요? 이렇게 사변적인 얘기를 하다 보면 정작 사랑의 의미는 점점 더 상실되는 듯 합니다. 새벽 이른 시간에 무쳐둔 톳 나물에서 아내의 냄새가 납니다. 마음
씀씀이가 느껴집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그런 것이 사랑인 줄 조금씩 알게 됩니다. 대단히 큰 무언가를 해야만 의미 있는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것 또한 머리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소한 사랑의 표현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위한 사소한 사랑의 표현이 그 사람을 구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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